메뉴 건너뛰기

ANMCCF

QT묵상

우리 손에 물맷돌이 있습니까?

 

2017년 9월 23일

마은성 집사

 

0. 나누고자 하는 말씀: 사무엘상 17:31-40

(삼상 17:31)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삼상 17: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삼상 17: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삼상 17: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삼상 17: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삼상 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삼상 17: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삼상 17: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삼상 17: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삼상 17: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 본 글은 이찬수 목사님의 “손의 물맷돌 있습니까?”라는 주제의 짧은 설교영상에 영향을 받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1. 익숙함의 은혜

오늘 저희가 나눈 말씀은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이고 기성교회의 설교에서도 여러번 다루어진 부분입니다. 만약 주일학교부터 교회를 다니신 분이라면 몇 번이고 이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지 않은 많은 분들도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뻔하고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뭔가 새로운 메시지를 얻기는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익숙함’이 오늘 저희가 나눌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주님을 기대하면서 오늘 말씀을 같이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2. 줄거리

온 이스라엘 군사들이 블레셋의 큰 용사인 골리앗에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다윗은 화가나 당시 이스라엘 왕이었던 사울을 찾아가서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말을 합니다. 어차피 질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사울은 다윗을 설득해 보지만 다윗의 완강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투구와 칼을 다윗에게 줍니다. 하지만 그러한 군복과 칼에 익숙하지 못한 다윗은 시험적으로 입어보다가 이를 벗습니다. 그리고는 손에 막대를 가지고 시내에 가서 돌 다섯과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에게 다가갑니다.

 

3. 왜 물맷돌인가?

말씀을 읽고 나면 다윗에 왜 물매와 돌을 선택했을까하는 의문점이 생깁니다. 다윗에게 물맷돌은 어떠한 의미였을까요? 성경에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지만 우리는 사울과 다윗의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유추를 해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사울을 설득할 때 엄청난 자신감으로 가득 차 보입니다. 이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정말 죽일 자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소년이 양을 혼자 지키고 있을 때에 사자와 곰을 쳐 죽인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사자와 곰을 죽일 때도 물매와 돌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40절에 다윗이 시내에 가서 돌만 주웠고 목자의 제구-주머니-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춰볼 때 다윗은 항상 물매를 가지고 다닌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에게 물맷돌은 매우 익숙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익숙함 때문에 물맷돌을 무기로 선택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윗에게 물맷돌은 익숙한 것이기도 하지만 은혜의 통로이자 도구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고백하기를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기에 골리앗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이라고 합니다. 즉, 자신이 물매를 통해 짐승들을 죽일 수 있었지만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위대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물맷돌을 세상사람들과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물맷돌은 간단한 무기가 아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엄청난 무기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대상일지라도 쓰러뜨릴 수 있는 세상에서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다윗이 인지하고 있는 골리앗은 세상사람들의 그것과 또 다릅니다. 36절을 보면 다윗은 골리앗을 짐승으로 취급합니다. 할례를 받지 않아서,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해서, 그를 짐승으로 취급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짐승에 투영하고 있는 이유는 자신이 물매를 통해서 넘어뜨릴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기존에 사자와 곰을 물매를 이용해서 쓰러뜨렸다면, 다윗이 골리앗을 짐승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존재”라고 인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물매와 돌은 다윗에게 익숙한 것이기도 하지만 은혜의 통로였고,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짐승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자연스럽게 물맷돌을 자신의 무기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4. 세상이 인지하는 물맷돌과 골리앗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물맷돌을 하찮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42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을 업신여깁니다. 물론 그가 소년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투구와 창과 방패 없이 물매와 돌을 가지고 골리앗을 상대하는 그를 무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골리앗은 더 그러했습니다. 43절을 보면, 다윗이 다른 무기 없이 막대기만 들고 자신에게 나아오는 것을 보고 엄청나게 화를 내고 저주를 합니다. 창과 방패를 가진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의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는, 물매와 돌은 그거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골리앗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습니까? 17장 11절에 보면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골리앗을 매우 두려워했다고 나옵니다. 그들에게는 창과 방패가 있었지만, 투구와 갑옷이 있었지만, 골리앗을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창과 방패, 그리고 투구와 갑옷은 그들에게 은혜의 통로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하나님과의 자신들의 은밀한 비밀의 경험이 담기지도 않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어떠한 에피소드가 없었습니다. 그저 세상이 그들에게 던져놓은 무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경험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창과 방패로는 골리앗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창과 방패를 다윗에게 줍니다. 그것이 그가 믿고 있고 경험했던 세상을 대적할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5. 우리 어떠하고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손에 물맷돌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우리 앞에 있는 골리앗을 대적하고 있습니까? 재밌는 것은 다윗도 사울이 준 갑옷과 칼을 시험적으로 착용을 해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이 자신에게 맞는 무기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골리앗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세상적 기준에서 이길만한 무기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 그러한 것들을 대적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윗이 그러했던 우리는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에 막대를 가지고 시내로 나가 매끄러운 돌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셨던 은혜의 경험들을 들쳐봐야 합니다. 늘 익숙하게 생각했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기도와 말씀과 예배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다윗은 물매를 수백번 수천번 날려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맷돌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일주일의 단식기도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단식기도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절대 아닙니다). 며칠 간의 여름 수련회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정말 은혜스러웠던 한번의 찬양예배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은혜의 현장에서 경험하고 연습하면서 얻어지는 게 물맷돌입니다. 바울의 말처럼 우리는 날마다 죽어야 하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날마다 광야에 나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보고 물매와 돌이 있는 만져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다가오는 골리앗과 같은 여러 상황 속에서, 칼과 창과 단창으로 다가오는 세상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물맷돌을 시원하게 날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글과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 2017년 10월 07일 토요새벽기도 말씀 - 장하군 서리집사(빌 3:4~14) 장하군 2017.10.07 10
» 2017년 9월 23일 토요새벽기도 말씀 - 마은성 집사(삼상 17:31-40) 은성 2017.09.25 4
49 2017년 9월9일 새벽기도말씀 (계2:1~7) - 강미혜 집사 조혜빈 2017.09.16 10
48 2017년 8월 5일 토요새벽기도 말씀 - 마은성 집사(요 6:22~29) 은성 2017.08.05 29
47 2017년 7월 15일 토요새벽기도 말씀 - 강미혜 집사(요 15: 1~8) 조혜빈 2017.07.30 21
46 2017년 6월 24일 토요 새벽기도 - 장하군 서리집사(마 10:24~39) 장하군 2017.06.24 19
45 2017년 6월 3일 새벽나눔 -마은성 집사 은성 2017.06.03 34
44 2017년 5월13일 토요 새벽기도 - 장하군 서리집사(요14:1~14) 장하군 2017.05.13 32
43 2017년 4월1일 토요 새벽기도 - 강미혜 집사(레23:4~16,출12:1~14) 조혜빈 2017.04.05 22
42 2017년 2월 18일 토요 새벽기도 -마은성 집사 은성 2017.02.17 27
41 2017년 01월 28일 토요메세지 강미혜 집사 (눅 17:20~21) 정신희 2017.02.04 35
40 2017년 01월 14일 토요메세지 장하군 서리집사 (요 1:29-42) 장하군 2017.01.18 20
39 2016년 11월 19일 새벽기도 - 마은성 집사 (시편 46장) 은성 2016.11.28 42
38 2016년 11월 12일 토요메세지 강미혜 집사 (겔 22:30-31) 장하군 2016.11.20 28
37 2016년 10월 22일 토요메세지 장하군 서리집사(마 22:36~38) 장하군 2016.10.22 72
36 2016년 10월 15일 토요메세지 김형철 집사(눅 18:1~8) 김형철 2016.10.15 37
35 2016년 10월 8일 새벽예배 - 마은성 집사 (딤후 2:1-13) 은성 2016.10.08 61
34 [자매성경공부] 창세기공부 4주차 [3] 메리 2016.10.07 77
33 2016년 10월 1일 새벽기도 - 강헌용 집사 (롬 9:25~33) [2] HYKANG 2016.10.02 52
32 창조/진화 [1] file MHK 2016.10.01 36
위로